영국의 식민지였던 피지에는 영국 통치시대에 계약노동자로 피지에 이주해 온 인도인이 많이 살고 있으며 그 수는 전체인구의 절반 정도이다.
 
 

피지의 인구는 니글로(흑인)계의 피지인과 인도계주민으로 양분되어 있다. < >

인구비율은 피지인이 51% 인도인이 약44%로 거의 반반정도의 비율을 유지하고 있다. 피지를 한가로운 섬나라라는 이미지만 가지고 방문했던 사람들은 많은 인도인에 깜짝 놀랄수도 있다. 피지에 왜 인도계 주민이 이렇게 많은가? 그 이유는 19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 >

 

피지가 영국의 식민지였던 1874년. 이 땅이 사탕수수의 대규모 재배에 적합하다고 판단한 영국은 곧바로 식민지였던 인도에서 많은 노동자를 데려와 고용했다.< >

 이들이 현재의 인도계주민의 조상이다. 제 1차로 약 500명의 인도인이 피지에 도착했던 것이 1879년인데 그 이후 계약노동제가 끝나는 1916년까지 약 6만 명의 인도인이 피지에 건너 왔다. < >

이 배경에는 통치국 영국으로서 보면 기질적으로 태평한 피지인보다도 부지런한 인도인이 노동자로서 다루기 쉽고, 또한 인도인의 입장에서도 그 상당수가 카스트제도의 하층계급으로서 국내에 있는 것보다는 피지로 건너오는 편이 장래를 볼때 희망이 있었던 것이다. < >

실제 피지에서도 그들의 생활이 편하지만은 않았지만, 본국과 비교하면 하늘과 땅의 차가 있었다. < >

그 때문에 많은 인도인들이 계약으로 보증된 귀국의 길을 버리고, “피지의 인도인”이 되는 길을 택하게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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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피지경제에서 외자계 기업을 제외하고 절반이 인도인 기업가들이 차지하고 있다.
화폐경제에 익숙하지 못한 피지인에 비해 장사수완이 뛰어난 인도인은 계약노동이 끝나자마자 상업적으로 수완을 발휘하여 피지의 경제를 좌지우지하는 입장이 되었다.
 

정치적으로는 차별적인 대우를 받고 있지만, 국가로서의 피지를 생각할 때, 이제 인도계 주민을 빼고서는 아무것도 이야기할 수 없는 것이 현 상황이다.< >

 
 

피지인 사회가 마을 단위로 구분되어 있는 것에 비해 인도인의 경우는 종교와 관련되어 있다. < >

최대 세력은 힌두교이며 그 다음은 이슬람교, 시크교로 이어진다. 같은 인도계주민일지라도 사업을 할 때 종교가 다르면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서로 같이 하지를 않는다. < >

 

사람들의 사는 모양은 상인에서 농민까지 인도의 전통을 기본적으로는 이어가고 있다. 의상 하나를 봐도, 여성의 모습이 눈에 띤다.< >

 그렇지만, 인도인이 피지에 정착한 1세기 이상의 세월은 이 땅의 인도인 사회가 본국과는 다른 독자적인 문화를 만들어 냈다. < >

종교의 계율은 본국만큼 심하지 않으며 빈부의 차이는 존재하지만 카스트제도에 의한 신분의 구별은 거의 없어지고 있다. < >

인도인은 피지인과 같이 카바를 즐겨 마시기도 한다. 또한 피지의 인도인이 사용하는 힌두어도 본국과는 조금 다르다. 남태평양 섬에 뿌리 내린 인도인이 흥미롭기만 하다. < >